라이퀴아가 잠든 후에도 선생님은 한참동안이나 잠들지 못했다. 제 몸에 기대 자는 작은 아이가 혹여 불편할까- 아픔을 참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이슬레이가 어린 시절 열에 앓다 눈을 떴을 때면 꼭 보이던 그 얼굴이었다. 이슬레이에게는 들어가서 자라는 말을 하면서 본인은 연신 라이퀴아의 가슴을 토닥이고 있었다. 선생님의 눈은 반쯤 감겨있었다. 걱정에 억지로 졸음을 몰아내다가도 푹 고개가 꺾이고, 그것에 놀라 깨고 다시 고개가 꺾이기를 반복한다. 이슬레이는 그런 선생님을 보고 방에 들어가기는 커녕 이불을 들고 나왔다. 이불을 아이의 몸 위로 덮어주자 선생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착하네, 라는 한마디를 겨우 하고는 스르르 몸이 기울어진다. 선생님은 잠이 많은 편이었다. 한번 잠들면 쉽게 깨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에게 덮어줬던 이불 한 귀퉁이를 끌어 선생님의 몸 위까지 덮었다.


 또 혼자 깨면 곤란하니까, 이슬레이는 아무도 듣지 않을 핑계를 중얼거리고는 잠든 라이퀴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공연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어 라이퀴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라이퀴아의 얼굴 근육이 움찔거리는 것에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라이퀴아가 부드럽게 풀어진 얼굴로 웃으며 이슬레이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머리를 헝크러트리듯 한번 매만지고는 손을 떼어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잠들 수 없었다. 열이 나는 걸까, 라이퀴아에게 닿았던 손이 홧홧했다. 열이 오른 손을 쥐었다피며 이슬레이는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선생님과 라이퀴아는 맞춘듯이 일정한 박자로 호흡했고, 이슬레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한 것은 라이퀴아였다.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문질러가며 몸을 일으킨다. 거실 바닥에 헤어 드라이어는 콘센트만 뽑힌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젖은 수건은 소파에 대충 걸쳐 있었다. 선생님은 라이퀴아의 옆에 모로 누워 있었고, 이슬레이는 소파에 머리를 기대앉은 자세였다. 이슬레이는 이불도 없이 자고 있었고, 라이퀴아와 선생님이 함께 이불 하나를 나눠 쓰고 있었다. 주변을 보아하니 라이퀴아기 지난 밤 까무룩 잠든 이후 모두 거실에서 잠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7시 24분. 라이퀴아는 멍한 머리로 오늘이 주말인 것을 기억해냈다. 선생님은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바쁜 편이었지만- 라이퀴아는 선생님을 깨워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라이퀴아는 잠든 선생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감긴 눈꺼풀이 움찔 떨리고,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라이퀴아의 얼굴을 한번 확인하더니 그대로 라이퀴아의 몸을 감싸 끌어안았다. 더 자렴, 선생님은 다시 눈을 감고 속삭였다. 목소리에서는 졸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라이퀴아는 눈치를 보다 선생님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라이퀴아의 등을 완전히 감싸안은 팔이 도닥도닥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들었다. 졸리지 않다, 는 생각과 달리 따뜻한 체온과 도닥거림에 하품이 튀어나왔다.


 라이퀴아는 자신이 잠드는 것도 모르고 다시 잠에 빠졌다. 새벽 내내 난리를 쳤으니, 활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색색 숨을 고르는 소리만 거실에 가득했다. 비스듬하게 떠오른 해가 창문을 통과하며 길게 볕의 길을 만들었다. 햇빛이 발치를 간지르고, 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누워있던 선생님이 눈을 떴다. 선생님은 제 품 안에서 색색 숨을 고르는 라이퀴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라이퀴아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팔을 빼내고 일어나, 불편해보이는 자세로 자고 있는 이슬레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지난 새벽, 라이퀴아를 재운 이후의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이불은 이슬레이가 꺼낸 것이 분명했다. 이슬레이의 미간이 좁아지고 가느다란 주름이 잡혔다. 누워서 자야지, 선생님의 말에 잠이 덜 깬 이슬레이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미끄러지듯 몸을 움직였다. 선생님은 이불을 잘 정리해 아이들을 덮었다.


 "역시 닮았다니까..."


 이슬레이와 라이퀴아는 곡옥처럼 몸을 웅크리고, 등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사이 좋게 얼굴이라도 마주보고 자면 좋을텐데. 고분고분한 듯 하면서도 자기 주장이 뚜렷한 점 까지 닮은걸까. 그 모습이 아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웃음이 새었다. 흐뭇한 얼굴로 선생님이 아이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아이들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이슬레이도 라이퀴아도 날 너무 좋아한다니까. 아, 하고 뭔가 생각난 듯 선생님이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가져왔다. 등을 맞댄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홈화면으로 등록한다. 둘이 안다면 불만스러워 하겠지만 억지로 사진을 지우지도 않을 것이다. 선생님에게도 둘은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었다. 일단 좀 더 자게 둘까, 성장기의 아이들은 충분히 자야지.


 칫솔에 치약을 눌러짠다. 느긋한 움직임으로 칫솔을 입에 물고 아직 열려있는 환기창을 닫았다. 선생님은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치약의 맛이 신경쓰였다. 어린이용 치약이 필요할까, 5학년이면 필요 없나. 하지만 라이퀴아 매운거 싫어하기도 하고- 선생님의 최초의 육아는 중학생 이슬레이와 함께 였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시기적으로는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전적으로 어른의 기준이었다. 이슬레이도 해가 다르게 성장했고, 심지어 꽤나 어른인 척 하는 아이에 속했다. 그러고보니 그런 점도 닮았네. 선생님은 칫솔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큭큭 웃었다. 이슬레이는 키도 빨리 자란 편이었지만, 라이퀴아는 또래보다 두어살은 어리게 보일 정도로 작았다. 세면대는 쓰기 불편하지 않으려나. 수납장은 너무 높지 않을까. 옷도 사야겠지. 잠옷은 귀여운 걸로 사줘야겠다. 이슬레이 만큼이나 빨리 자라려나. 오래 어리광 부려도 좋을텐데.





 이슬레이와 라이퀴아가 깬 것은 선생님이 씻고 나와 부엌을 뒤질 때 였다. 선생님의 계획으로는 아이들을 더 재우고,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 후 느즈막하게 깨울 생각이었지만- 성실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은 그 전에 깨버렸다. 이슬레이는 일어나자마자 씻으러 들어갔다. 밥으로 뭐가 좋은지 고민하느라 냉장고를 열중해 뒤지고 있던 선생님은 물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누군가 깬 것을 알아차렸다. 라이퀴아는 뭉그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제 옆을 몇번 짚었다. 손에 아무것도 닿는게 없자 라이퀴아의 인상이 한껏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봤다. 멍한 머리로 선생님도, 그리고 또 다른 동거인도 없는 것을 알아차린 라이퀴아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허둥지둥 일어났다. 부엌과 거실이 이어진 구조의 집이었기에 라이퀴아는 금방 선생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한 것 만으로도 아이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가느다란 발목에 긴 바지가 자꾸 채여 불편할만도 했건만, 라이퀴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기어코 발 아래까지 흘러내린 옷자락을 밟고 몸이 기울었다.


 "아침 인사야?"


 폭, 제 품안에 안긴 라이퀴아를 보며 선생님이 물었다. 라이퀴아가 뭐라 대답하기 전에 두 팔이 그대로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라이퀴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라이퀴아는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선생님 기뻐보여. 라이퀴아는 선생님을 따라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라이퀴아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발 끝이 살짝 뜰 정도로 강하게 안긴 라이퀴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뭐하세요?"


 둥실둥실 들뜬 두 사람을 본 이슬레이가 물었다. 이슬레이는 일어난지 얼마 안 된 사람 답지 않았다. 미형의 얼굴은 약간 피곤한 기색이 돌았지만 여전히 말끔했고, 물기가 살짝 남아있는 머리카락은 눌린 자국 없이 단정했다. 이슬레이도 할래? 선생님이 한 팔로는 여전히 라이퀴아를 끌어안은 채 다른 한 팔을 벌렸다. 선생님에게는 방긋방긋 잘도 웃던 라이퀴아가 경계하는 얼굴로 이슬레이를 바라봤다. 이슬레이가 거절하자, 안도한 얼굴이 한숨을 내쉰다. 너무 노골적인데. 아직 숨길 줄을 모르는 건가. 이슬레이의 거절에 선생님은 크게 신경쓰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라이퀴아를 안았다. 오히려 거절한 이슬레이만 찝찝해진 채 입을 삐죽였다. 씻고 와. 선생님의 말에 라이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에게 아침 인사도 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라이퀴아가 씻으러 들어간 동안 이슬레이는 거실을 치웠다. 헤어 드라이어의 선을 꼼꼼하게 감고, 이불을 개켜 방에 가져다두고, 소파 위를 뒹구는 수건을 거둬 세탁물함에 가져다 놓는다. 딱히 힘들 일은 없었지만 밤 동안 소파에 머리를 괴고 잔 탓인지 특정 각도로 움직일때면 목이 뻣뻣하게 당기며 아팠다. 목덜미를 누르며 머리를 좌우로 움직인다. 욕실에서 나온 라이퀴아가 의아한 얼굴로 이슬레이를 바라봤고, 이슬레이는 시치미를 떼며 몸을 곧게 폈다. 아침 겸 점심이 된 식사는 크루통이 올라간 인스턴트 스프였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보이지도, 더 먹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라이퀴아는 딱 제가 먹을 만큼을 천천히 먹었다. 선생님은 이슬레이와 라이퀴아의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하고는 스푼을 들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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