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걸 씁니다. 라이퀴아른. 육아물과 아침드라마를 적당히 섞었습니다.

*현대 au, 유료분네타캐릭터 + 이슬레이 + 라이퀴아가 가족이 됩니다. 유사 근친 요소 주의, 주요 인물부터 네타 주의. 나이 조작 있습니다.




 돌아온 집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이슬레이는 팔에 걸고있던 장바구니를 현관 안쪽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신발을 벗고, 책가방을 방문 앞에 기대둔다. 이슬레이는 거실에 불을 켜고 베란다 문을 열어 환기시킨 뒤 부엌으로 향했다. 교복 마이를 의자 등받이에 걸쳐두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다. 냉장고에 넣어야 할 것, 오늘 쓸 것을 분류하고 싱크대 안을 확인한다. 하지 마시라니까, 방금 설거지를 끝낸 듯 안쪽이 젖은 채 텅 빈 싱크대에 이슬레이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집안일은 대부분 그의 몫이었다. 이슬레이를 맡아주고 있는 사람은 바쁜 편이었고, 갑작스레 얹혀 살게 된 이슬레이로서는 집안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 더 편했다. 이슬레이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를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 사람은 좋은 스승이었고, 항상 부드럽게 웃고, 바쁜 와중에도 이슬레이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족으로 여길만큼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묘한 죄책감과 불안이 이슬레이의 신경을 긁었다. 이슬레이는 조금이라도 더 선생님에게 쓸모가 있고 싶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할 수 있는 건 나눠서 하면 돼- 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대꾸할 뿐이었다. 사람을 쓰자는 얘기도 나왔었지만, 자기 공간을 소중히 여기는 이슬레이로서는 타인이 영 탐탁치 않은 선택지였다. 선생님은 '돈 아까워요' 라는 대답은 들은 척도 안하더니 '집에 남이 들어오는게 싫다'는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살펴본 세탁물은 이미 건조대 위에 있었다. 곱개 갠 빨래들이 거실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 까지 확인한 이슬레이는 자기몫의 옷과, 벗어둔 마이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앞에 덩그러니 놓인 가방을 책상 위로 던져두면, 두꺼운 참고서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교복을 갈아 입고 나와 시간을 확인하니 시계의 짧은 바늘이 5와 6의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밥을 먹고 들어올 때면 항상 연락이 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는걸 보면 곧 돌아올 것이다. 이슬레이의 기다림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이제 들어갈게, 6시 쯤에는 도착할…>


 제법 긴 내용인지 팝업으로 뜬 메시지 창에는 말 줄임표가 달려 있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슬레이는 굳이 이어지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화면을 껐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집안에 열어둔 창문을 닫는다. 낮은 온도로 난방을 틀고 부엌으로 향한다. 선생님도 이슬레이도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못 하지도 않았다. 대충, 감으로, 그리고 인스턴트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이슬레이는 소매를 걷고 냉장고를 열었다. 기억으로는 개봉한지 한참인 파스타 소스가 종류별로 냉장고 한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보니 아슬아슬하게 먹을 수 있다. 양파, 베이컨, 버섯에 마늘 그리고- 이슬레이는 기억을 더듬어 재료를 꺼내고 손질했다. 잘게 썬 양파를 볶다 투명해지면 잡다한 야채와 베이컨을 넣는다. 기름이 조금 부족한가 싶지만, 베이컨이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버터를 큼직하게 잘라 넣으면 순식간에 향이 올라왔다. 붉은 소스들을 깔끔하게 긁어가며 넣고 빈 병은 물을 흘려 씻었다. 눈대중으로 우유를 넣고, 시간을 확인하니 타이밍 좋게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슬레이, 나 왔어- 맛있는 냄새."

 "오셨ㅇ..."


 이슬레이는 가스레인지 불을 줄이고 부엌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맞이하는 인사가 나오다 말고 끊겼다. 선생님의 한 손에 커다란 백팩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작고 마른 손을 잡고 있었다. 이슬레이는 입꼬리를 조금 끌어내린 채 선생님을 바라봤다. 이슬레이의 표정에 선생님은 당황한 듯 메세지 못봤니? 라고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 쯤 됐을까, 작고 마른 아이였다. 검은 곱슬머리가 눈가를 답답하게 가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눈에는 경계가 가득했다. 잡은 손은 놓지 않은 채 선생님의 뒤로 몸을 숨겼다. 턱을 조금 안으로 끌어당겨 제 표정은 가리면서도 이슬레이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이슬레이는 '집에 남이 들어오는게 싫다' 고 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다면 별 수 없지, 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남이 들어왔다. 이슬레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릇 세개 준비하면 되는거죠? 태연을 가장하는 목소리에는 화가 섞여 있었다.




 침묵뿐인 식사시간이었다. 원래 식사를 하며 떠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훨씬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보려 몇가지 화제를 던졌지만 이슬레이의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래요- 따위의 단답에 모든 화제가 차단됐다. 아이는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제 몫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계란은 조금씩 스프와 섞어 먹어치우고, 구운 빵에 건더기를 잔뜩 올려 열심히도 먹었다. 통통한 뺨이 부풀어오르도록 음식을 가득 물면서도, 소리 없이 오물오물 씹어 삼킨다. 속이 든든해지자 잔뜩 굳어 경계하던 얼굴이 느슨하게 풀리고, 뺨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의 얼굴을 흐뭇하게 보다, 이슬레이 쪽을 힐끔 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더 먹을래?"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에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철저한 대외용 얼굴에 선생님은 역시나,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여서 제 몫을 더 받고 분주히 숟가락을 움직였다. 너무 급하게 먹는 듯한 모습에 선생님이 아이의 입가를 닦아주며 나무랐다. 2인분을 기준으로 만든 것을 셋이 나눈 것은 평소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이슬레이도 선생님도 더 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라이퀴아, 선생님은 형이랑 얘기하고 올게. 선생님이 웃으며 라이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라이퀴아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선생님과 이슬레이를 번갈에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 먹은 그릇은 그냥 둬, 이슬레이는 마지막까지 사근사근 얘기하며 먼저 일어난 선생님의 뒤를 따라 나갔다.


 아이, 라이퀴아는 순식간에 혼자 남은 공간에 그제서야 몸의 힘을 풀었다. 둥근 어깨가 축 늘어지고 눈썹 끝이 애처롭게 내려갔다. 음식이 든 그릇 바닥을 긁다 겨우 한 숟가락을 더 뜬다. 배가 부른 것은 한참 전이었지만, 무거운 분위기에 할 수 있는게 없어 반복적으로 음식을 입에 밀어넣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집도 안되려나, 라이퀴아는 자신을 처음 본- 이슬레이라고 불린 남자의 표정이 순간 구겨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집 저집을 옮겨다니는 생활로 몸에 밴 눈치는 그 순간의 악의를 알아차렸다. 다시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라이퀴아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으려 애썼다. 꽉 찬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단 둘이 되자마자 싸늘하게 굳은 이슬레이의 표정에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쟤 뭐에요. 라이퀴아, 초등학교 5학년이고. 그걸 물어보는게 아니잖아요. 이제 함께 살 가족.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선생님의 말에 이슬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한테는 남이에요, 라고 기분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이슬레이 본인도 거둬진 입장이었고, 차이는 오직 순서 뿐이었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은 오랜 콤플렉스였다. 이슬레이는 모양 좋은 입술을 잘근거리다 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크러트렸다.


 "돌보는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늘 하던대로- 할 수 있는 건 나눠서, 힘든 건 도움을 받아서. 일도 줄일거야."

 "...뜻대로 하세요."


 이슬레이는 한껏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강하게 쥔 주먹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면 안돼, 선생님의 손이 이슬레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리가 가족이 될꺼니까, 너도 라이퀴아도 납득했으면 좋겠어. 이슬레이는 선생님의 다정함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싫었다. 열등감이 제 속을 들쑤셔놨다. 라이퀴아라는 아이를 볼 때면 더 그랬다. 자신은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라이퀴아는 못난 자신과 닮아있었다. 비쩍 마른 몸, 불쌍하기 짝이 없는 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양 떨지 않고,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사람을 관찰하는 것 까지. 이슬레이는 라이퀴아가 불쌍했다. 하지만 선생님도 그런 이유로 자신을 데려왔다 생각하면 비참함을 참을 수 없었다. 자존심은 오래도록 이슬레이를 지탱하는 것이었다. 악문 이가 으드득 갈리는 소리를 냈다.

 제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내일 얘기하자, 고 속삭이는 스승님에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슬레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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